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트남 전쟁/한국군/논란 (문단 편집) ==== 일본군과 같다? ==== '''아니다.''' [[피장파장의 오류|피장파장의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일본 극우들의 주된 '[[물타기#s-2|물타기]]' 수단이지만, 이런 비유는 큰 잘못이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사령부에서 여성들을 군인들을 위한 성노예로 만들고 [[731부대|민간인 생체 실험]]과 수 없이 많은 [[학살]][* [[마닐라 대학살]], [[난징 대학살]] 등이 잘 알려져 있다.]까지 했던 일본군'''의 경우와 '''한국군의 경우는 분명히 다르다'''. 주월한국군사령부에서는 분명히 '''민간인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항목이 생겨난 이유는 [[http://www.mercury.sannet.ne.jp/emadukawiemogosi/1112KankokuNoSensooHanzai.html|일본]] [[https://www.sankei.com/smp/west/news/170430/wst1704300004-s2.html|우익측의]] [[http://japan.hani.co.kr/arti/opinion/29548.html|언론플레이와]] 월남전 당시에 한국군과 엮인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조작이건, 과장이건 사실이건) 급격히 일본군과 비교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한겨레나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한국군과 연루된 사건관련 기사나 포스트가 올라오면 "일본군과 다름없네" 혹은 "우리가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니 우리도 베트남에게 사과하자"라는 글들이 심심치 않게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심각히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일이다. 물론 민간인 피해에 대해서[* 대표적인 예가 김종수 소위 사건이다.] 사과를 하는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잘못된 정보를 이용하면서 이것을 일본군과 비교하는것이 큰 우가 되는 것이다. 김종수 소위 사건을 봐도 알겠지만 작전중 민간인을 베트콩으로 오인해 우발적으로 사살한 사고지, 일본군과 같이 사령부 단위의 조직적 학살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과 단순비교상에 있을수가 없다. 미라이 학살에 대해 미국도 인정을 하고 주동자를 처벌했으며 유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월미군이 나치들과 비교되지 않는것과 마찬가지다. 비교하자면 2차대전 당시 연합군들이 저지른 전쟁범죄들도 있겠다. 당시 복수심에 불타올라서 포로들을 학살한 경우가 많은 소련군은 그렇다 쳐도, 미군이나 영국군도 전쟁범죄를 저지른 기록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사령부에서 민간인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은 게 아니라 몇몇 소수의 개인적인 일탈 때문에 일어난 범죄들'''일 뿐이었다. 애당초 연합군이나 한국군이나 [[신멸작전|군 수뇌부 차원]]에서 아니면 [[난징 대학살 사건|현지 사령부 차원]]에서 또는 [[홀로코스트|국가적인 결정]]과 [[관동 대지진/일본군의 학살|정부 차원의 조직적인 학살 명령]]으로 학살을 한적은 '''전혀''' 없었다. 많은 참전용사들은 당시 전쟁 수행 과정에서 민간인 '피해'가 있었을 가능성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베트콩과 민간인을 구별하기 힘든 상황에서 일어난 사고거나 또는 개별 병사가 저지른 개인적인 범죄이자 일탈이었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당시 전쟁에서 공식적인 명령은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민간인을 살리는 것을 우선하라'''였기 때문이다. 민간인의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갑자기 총을 들이댈지 모른다는 공포감은 정말로 무시무시한 것이다. 아니, 그 정도를 넘어서서,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은 마을로 들어가는 게 정글로 들어가는 것보다도 더 무서웠다고 증언한다. 정글로 들어갔을 때 북베트남군이나 베트콩과 교전을 피하거나 하더라도 피해 없이 살아남을 수는 있어도, 마을로 들어가면 십중팔구 장병 중 한 명이 죽는다고 할 정도였다. 선량해보이는 할머니가 갑자기 해병대를 향해 총을 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벌여진다는 것이다.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행해지는 비정규전은 정말로 위협적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에서의 미군도 민간인으로 위장한 테러리스트나, 테러리스트로 오인해 민간인을 사살한 충격 등으로 엄청난 [[PTSD]]에 시달렸다. 영화 람보에서 질질 짜는 람보의 모습이 전형적인 [[PTSD]]의 모습.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미군은 당시 궁지에 몰렸었고 한국인 중 북한군이 섞여있을 가능성을(실제로 북한과 남로당에서 자주 써먹던 짓이다.) 들어 이미 민간인들이 대다수임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사건을 자행했다.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특히 외국에서 수행하는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민간인임을 알면서도 학살을 자행하기 쉽게 만든다. 요즘 일본과 민간 토론을 진행해 일본의 사과와 배상문제를 언급하면 "너희가 베트남에서~"로 많이 대응하고, 이게 기사화된 적도 있다. 여기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은 위에서 나온대로 당시 일본군이 얼마나 썩었는지, 당시 일본이 얼마나 미쳐 돌아가던 나라인지, 한국은 어떤 과정을 통해 월남전에 참전했고 무슨 활동을 했는지 등을 조목조목 비교해주는 것이다. 또한 "베트남에서 학살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고 그것이 제국주의 시절 일본의 만행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군 사령부는 최소한이라도 이런 사태를 막으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명령도 철저히 양민을 보호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군사재판으로 밝혀진 사건의 가해자들은 처벌했다. 전쟁이란 게 원래 뜻대로 되지 않아 가슴 아픈 사건들이 일어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애초 한국이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이유는 불법침략 및 강제적 합병, 그리고 '''정부에서 명령한 학살, 징병 그리고 강간''' 때문이다. 베트남전의 한국군 개입이야 물론 말이 많고 정당성에 관해서는 아직 논란이 많지만 일본과 비교할 만큼 우리가 전쟁시작에 '''관계된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침공은 절대 아니었다'''. 더구나 한국도 월남전 도중에 발생한 [[베트남 피에타|민간인 피해에 대해 사과하였으며]] 전승국이었던 베트남도 크게 문제시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승자의 아량일 수도 있겠지만, 현재 베트남 정부의 전신인 북베트남도 베트남 전쟁 와중에 후에에서 무려 6천 명의 민간인들을 죽인 [[후에 대학살]] 같은 일들이 있기 때문에, 만약 민간인 피해에 대한 배상이 정식으로 논의가 되면 베트남 정부를 상대로 베트남 민간인들이 대대적으로 소송을 벌일 수 있어서 그냥 이대로 덮어둔 것이다. 파월국군을 인정하지 않고 납북시킨 세력들인데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싶지 않을 것이다. 현 공산당이 베트남에서 몰락하기 이전까지는 불가능 그 자체이다.] 특히 한국 교과서에도 월남전 당시 한국군으로 인하여 발생한 민간인 피해와 [[라이따이한]] 문제에 대해서 기록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또한 일본은 베트남도 침략할 때 학살을 한 전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한국군 논란' 을 퍼트리는 이유는 일본의 사례와 한국의 사례를 동일시시키고 자국의 사례를 덮어버리려고(...)[* 2차 세계 대전 때, 일본군이 베트남을 점령하면서 식량을 강제로 공출해가는 바람에 무려 200만 명의 베트남인들이 굶어죽은 일이 있었다. 일본에서도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 다만 굶어죽은 베트남인들의 숫자가 30만 명이라고 줄여서 말할 뿐이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군에게 죽은 베트남 군인과 민간인들을 모두 합한 수보다 최소한 30배나 더 많은 숫자다. 베트남한테 저지른 죄의 무게로 보면, 일본인들은 한국군의 베트남인 학살 문제를 들먹일 자격이 없다.[[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17184306&sca=&sfl=mb_id%2C1&stx=gandhika&spt=-931129&page=4|출처]]] [[https://blog.naver.com/kcm1996/221128768779|최근 한국군이 베트남 여성을 강간했다는 일본발 뉴스가 날조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한 일본인 기자가 한국군이 미군의 군수물자를 빼돌리는 기사를 쓰던 도중 한국군이 자주 들르는 터키탕에서 매춘 행위가 벌어졌는데 이것을 민간인 학살과 강간으로까지 확대시킨 것. 심지어 해당 가사에 나온 앤드류 핀레이슨의 증언: "한국군 위안소는 확실히 사이공(호치민)에 있었다. 한국군이 베트남 여성을 강간하거나 개별적으로 성관계를 갖는 것을 방지할 수 있고, 성병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안소 내 여성들은 대부분 베트남 농촌 처녀들이었다"도 훗날 개별적인 인터뷰에서 확인한 결과 그런 말 자체를 한적이 없다고 한다. 인터뷰에선: "난 사이공에서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고, 한국 해병대와 지낸 시간은 불과 2시간 정도였다. 취재 당시 위안소(Comfort Station)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사이공에서 5년 정도 지낸 사람에게도 물어봤는데, 그런 장소를 모른다고 했다. 그런 곳이 있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헌병대가 알지 난 모른다." 라고 말한걸 보니 NARA(기사에서 인용한 행정부)의 공문서를 얼마나 심각하게 오역 그리고 의역한 기사인지 알 수 있다. [[http://v.media.daum.net/v/20171020145510637|한국군 전용 베트남 위안소 관련 기사가 허구임을 밝히는 정정 기사의 링크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20610|한국군 전용 베트남 위안소 관련 기사가 허구임을 밝히는 정정 기사의 링크2]] 2019년 10월 무렵에는 일본 인터넷상에 한국군이 베트남 여자를 강간살해한 후에 웃었다는 사진이 널리 돌아다녔으나, 사실 확인 결과 이 사진은 일본 아사히신문이 1971년 출간한 '사진보고 전쟁과 민중'이란 제목의 사진집으로, 한 종군 사진작가가 베트남 전쟁 때 미군과 베트남군을 따라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모아놓은 것이며, 사진속 군인들은 한국군이 아닌 미군이며, 그 내용도 미군과의 교전 중에 죽은 베트콩이었다. 그런데 일본 우익들은 사진의 실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사진 속 미군들의 상반신을 교묘하게 트리밍한 뒤 한국군으로 둔갑시켰고, 베트남 여성들을 강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것처럼 사실을 왜곡했던 것이다.[[https://news.v.daum.net/v/20191002050201636|베트남女 강간살해 뒤 한국군 미소? 日 우익이 사진조작했다]] 베트남전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일본 밀덕들은 금방 조작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진 속 군인들이 M16이 아닌 [[M14 소총]]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